20세기에도, 21세기가 된 지금도, 우리나라만큼 미국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對韓 정책은 단순한 외교 정책의 하나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들 정책에 따라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겪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 그것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보시다시피 이번 발제의 주제는 1950년대 미국의 대한 정책이다. 그 정책들을 큰 묶음으로 묶어서 살펴보는, 가장 초보적이고 식상한-그러면서도 기본적으로 배울 것은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방법을 쓰기로 하였다
발제 참고문헌은 마지막 장에 기록하였다. 2.1950년대 미국의 對韓 군사 정책 (1) 미국의 동북아 전략 미국은 1950년대에 들어와 대소봉쇄, 대중봉쇄, 제3세계의 민족해방운동을 억제 이러한 미국의 논리에 의해 제3세계 국가의 민족해방운동은 번번이 무산되었으며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정권의 탄생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등의 정책으로 국제헌병, ‘세계의 경찰관의 역할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냉전논리에 입각한 힘의 정책으로써 자유민주 진영(안정)을 위해 사회주의 진영(불안정)에 맞서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런 기본적 틀이 1950년대 미국 대외 외교정책의 바탕이라 볼 수 있다. )
하지만 당시 미국의 내부 사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미국은 당시 계속되는 적자재정과 인플레이션에 봉착하여 군사비를 삭감하고 긴축재정을 꾸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하워의 ‘뉴록정책(new look). ’) 타선책으로 미국은 보다 강력한 전략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소련을 압도하는 한편, 소련과 중국의 주위에 지역 방위체를 결성하고 동맹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미국의 세계전략 하에서 추진된 동북아 전략의 핵심은 개별국가와의 군사동맹과 이를 확대한 지역통합전략이었다. 미국은 한국전쟁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를 계기로 동북아 지역의 여러 나라와 군사동맹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 살펴볼 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국가에 중점을 두었는데 그 곳이 바로 한국과 일본이었다. 결국 미국의 군사동맹이 쉽게 성사되기 위해서는 한일관계의 정상화가 필요하였고, 따라서 미국은 전쟁기간 중인 1951년 10월이래 계속적으로 한일회담을 추진하도록 한일 양국에 압력을 넣었다
그러나 한일 민중의 거센 반발과 이승만 정권의 취약함으로 인해 이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결국 이러한 이유들이 미국 내에서 이승만 정권의 대한 문제제기와 신뢰도 하락을 가져왔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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